7화. 어른 초보




한 참 동안 육아기록을 쓰지 못했다. 


이유는 '바뻤다.'


안하던 엄마, 아빠 노릇이 몸에 베지 않아서인지 아내와 난 하루종일 서 있다. 사홍이가 3~4시간 간격으로 밥을 먹고, 하루에 10번정도 기저귀를 갈고, 보채면 수시로 안아서 달래주고, 목욕시키고, 우리 부부도 틈틈이 밥을 먹고, 집안 청소하고, 빨래하고, 젓병삶고, 밥하고, 국끓이고, 반찬만들고, 고양이 밥 주고, 고양이 화장실 치우고, 설겆이하고, 빨래개고, 쓰레기버리고, 택배오면 정리하고... 셀 수도 없이 많은 일을 하루 종일 하고 있다. 틈나면 잠자기 바쁘고, 틈틈이 집에서 돈벌이를 해 나간다.


아직 익숙치 않아서 뭔가 부산스럽고 번잡하다 손 치더라도 엄마 혼자 감당할 양이 아니다. 우린 둘이 하는데도 무릅 허리 삭신이 쑤시는데, 혼자 한다면 ..... 엄마들이 흔히 격는 스트레스와 우울증이 올 만 하다.


"벌써 지치면 안돼요. 아직 시작도 안했어요."


"곧 그때가 그나마 편하다는걸 알게 될거예요."


"힘들지? 앞으로 더 힘들어질거야."


가끔 페이스북에 엄살을 떨면 배부른 투정에 육아 선배님들의 무시무시한 조언을 남기고 가신다. ㅋㅋ 그런데 뭐~ 힘들어지기 밖에 더 하겠나? 몸이 고생하는 거야 익숙하고 좋게 생각하면 잠도 잘오고 견딜만 할 것이다. 두려운 건 '잘' 키우는 것이다. 


"잘 할 수 있을까?"


내가 어릴적 아버지를 많이 기다렸던 기억이 난다. 엄마에게 묻고 했다. 


"아빠 몇 밤 자면 와?"


"백 밤 자면 오셔"


70년대 중동붐때 아버지도 해외 노동자로 자주 외국에 나가시곤 했다. 국내에 들어오셔도 건설업에 종사하시다 보니 지방출장이 잦아 집을 비우실 때가 많았다. 아버지가 집에 있을 땐 퇴근길에 항상 뭔가를 사들고 들어오셔서 자는 나를 깨워 먹이곤 하셨다. 나에게 아버진 근엄하고 무서운 존재라기 보단 따뜻한 자상한 분이다. 


한번은 형과 내가 대형사고를 쳤다. 통장에 든 전 재산을 날려먹는 대형 사고다. 그때도 아버지는 "아이구 잘 까먹으셨어?" 하고 큰일 아니란 듯 툭 던지시고 말았다. 훗날 엄마에게 들은 얘기론 며칠을 잠을 못 주무셨다고 한다.


자상한 아버지지만 자상함 못지 않게 많은 사건사고가 있었다. 남에게 싫은 소리 못하는 성격 탓에 가족이 힘든 처지에 놓이기도 했다. IMF 전후 회사를 잃고 어찌된 영문인지 수억에 가까운 빚더미가 날벼락 처럼 쏟아졌다. 뭔가 그럴싸한 사업을 하다 망하거나 이해할 수 있는 이유가 아니라 가족 모르게 여기저기 쌓인 빚이 있었다. 엄마는 홧병으로 극단적인 행동을 보이기도 했다. 난 그 당시 집에 아무도 없더도 불안했고, 집에 사람이 있어도 불안했다. 집에 있어야 하는 주말이 끔찍했다. 하지만 갈 곳도 없고 도망 갈 수도 없었다. 나라도 없으면 정말 큰일이 날 것 같았다.


지금 아버지에 대한 이미지는 어릴적 자상함 보다, 가족을 힘들게 하고 우유부단 성격의 소유자란 이미지가 강하게 자리잡고 있다. 난 저러지 말자, 난 닮지 않으리라... 아직도 솔직히 원망아닌 원망이 가시질 않는다. 그 흔해 빠진 유치원, 학원 한번 보내지 못하면서 돈 버셨으면 지금 편히라도 사셔야지... 지금 아버진 힘없는 노인이다. 힘없는 노인의 몸으로 택시 운전을 하신다. 한편으론 안쓰럽고 한편으론 왜 이렇게 밖에 못하셨을까 답답하다.


난 어떨까? 다르다고 생각한 난 지금.. 아니 더 많이 늙어 어떨까? 


사홍이는 커서 날 어떤 아빠로 마음속에 각인될까?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난 다르게' 살려고 하지만 현실의 감옥에서는 결국 아빠란 모습은 뻔하게 정해져 있는 건 아닐까? 어려도 자식이 있으면 어른이란 옛말이 헛것은 아닌가보다. 아빠 초보 못지 않은 어른 초보... 사홍이를 잘 키우려면 내가 '잘' 어른이 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