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아빠의 출산 기록 2부

어른들께 자주 듣는 말이 '애 낳아보면 안다.' 이다.

그래 낳아보지 않으면 모르는게 많다. 아니, 알 필요가 없다는게 맞겠지~

스티븐호킹 박사가 인공지능에 대해 이런말을 했다. '인공지능은 계산이 불가능한 엄청난 이익과 역시 계산이 불가능한 엄청난 위험을 눈앞에 둔 것이다.' 호킹박사의 인공지능에 대한 경고를 여기서 다루려는게 아니기에 여기까지만 인용하면, 우리에게 축복처럼 주어지는 한 생명도 가늠하기 어려운 엄청난 행복과 역시 가늠하기 힘든 엄청난 고난이 함께있는 것 같다. 이제 문을 연것에 불과한데 너무 거창한가? ㅋㅋ 그래도 이때 아니면 또 언제 무게 잡아볼까. 나중에 읽어보면 콧방귀가 나올 수도 있겠지만~ ㅎㅎ 

어찌됐건 시작은 했고, 벌써부터 미드 CSI 처럼 매 순간마다 풀어야 할 숙제가 있다. 난해한~



16년 출산 당일

형언하기 힘든 출산과정이 지났다. 어떻게 사람이 자궁에서 만들어지는지? 저 큰 아이가 어떻게 엄마의 생식기에서 나올 수 있는지? 궁금하기 보다는 경이롭다. 

원장님의 능숙한 손놀림으로 산모 후처리를 한다. 문득 출산전에 원장님이 한 말이 생각난다. '난 산모가 더 중요하다.' 태아와 산모 둘중에 고르라면 산모를 고르실 것 같다. 산모를 위해 마무리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아이가 살던 집안을 깨끗이 치우고, 쓸고 닦는다. 그리고 절개한 회음부를 봉합하는 등 외과적 처리로 마무리 하신다. 

아내와 난 잠시 숨을 돌리니까 잠시 나갔던 아이가 싸게에 싸져 트레이를 타고 왔다.

불러 봤다.

아이가 아빠 한번 보고 침대에 누워있는 엄마를 한번 쳐다본다.

"당신들 였어요?" 하고 보는 것 같다.

엄마를 바라보는 뽀은이


원장님이 빠르게 말을 한다.

"아이에게 청색증이 보여요. 청색증은 호흡이나 폐에 이상 신호일 가능성이 있는데 지금 소아과 선생님이 없어서 아무래도 대학병원에서 확인하는게 좋겠어요."

불안하다.

"어느정도 시간이 지나면 정상으로 돌아오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아무래도 소아과 의사가 보는게 좋겠어요. 대학병원에 연락해 놨으니 아빠는 준비하세요."

"네? 네 네"

이성적인 판단은 불가한 상태다. 일단 지금으로서는 원장님이 하나님이다. 하라면 해야지. 서둘러 채비하고 아내에게 금방 올테니 걱정말라는 말을 남기고 어느새 도착한 119에 핏덩이를 안고 탓다. 동행해 주신 원장님은 특유의 투박함으로 딴에 큰 문제는 아닐거란, 잘 안하시는 애매모호한 말을 툭 던지신다. 태어나서 엄마 품 냄새가 아닌 쾌쾌한 엠플런스 냄새를 세상의 냄새로 기억하진 않았으면 좋겠다. 

어렵다는 대학병원에 입원할 수 있어서 다행으로 여겨야 하나? 아니다 가지 않는것이 다행인거다. '신생아집중치료실' 이중문이 열리고 영화에서 볼법한 부저음과 낯선 장비가 가득한 방에서 간호사가 나온다. 아이를 간호사에게 뺏기고 수많은 부모의 초조함에 쩔은 대기실 의자에 앉아 기다린다.

느릿한 시간이 지난 후 얼굴 한 대 때려주고 싶은 번질한 젊은 남자 의사가 차트를 들고 온다. '어쩌구 저쩌구 주저리 주저리~' 요약하면 일단 들어왔으니 우리가 하는 의료행위에 대해 너는 동의를 하라는 것이다. 신경이 곤두서서 였을까? 가득이나 예민한 내 귀에는 친절함 속에 묻어있는 잘난 대학병원의 권위감이 거슬린다. (참고로 실제 그 의사가 그렇다는 것이 아니다. 더럽게 예민한 아빠의 환청내지 경계심이다. 첫 대면이후로 그 남자의사는 복도 지나는 모습만 몇번 봤다. 항상 손으로 스마트폰을 만지고 있었다.)

입원 수속을 마치고 두고온 아내 걱정으로 급히 택시타고 다시 산부인과로 달린다. 아내는 간호사 선생님들의 도움으로 4층 입원실로 안전하게 옮겨져 있었다. 간호사들은 의사와는 또 다른 하나의 큰 영역이다. 의사의 졸개가 아니다. 그들만의 전문지식과 노하우 그리고 도움이 없으면 아마도 의사는 홀로 말라죽을 것이다. 아내가 제왕절개의 유혹을 뿌리치게 한 것도 간호사의 단호하고 믿음가는 조언이 한 몫했다.



16년 입원 + 1일

하루가 지났다. 난 아이가 있는 병원을 찾았다. 말로만 듣던 인큐베이터에 피곤한 듯 누워있다. 산소 후드를 쓰고 있었고, 팔에는 수액주사, 아이 상태 체크를 위한 전선이 몸 군데군데 붙어있다. 그리고 직수가 어려워 입에는 얇은 관이 연결돼 있다. 지금은 더 두고봐야 하는 상태라고 한다. 검사도 진행돼야 한다. 즉, 보채지 말고 기다리라는 거다. 절차가 있으니깐. 

이곳 대학병원 신생아 중환자실은 정오 12시, 저녁 6시 두번 면회가 가능하다. 부모만 가능하고 12시 정오에 부모중에 한 명만 가능하다. 머리론 이해한다. 그냥 만들어진 룰은 아닐것이다. 많은 생명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임에 틀림없지만 야속한 규정이 아닐 수 없다.



16년 입원 + 2일

퇴원일이 궁금하다. 

"선생님~ 언제쯤 퇴원 가능할까요?"

"정확히는 알기 어렵고 검사 결과가 나와 봐야 합니다."

"결과는 언제 나오나요?"

"절차가 있어서 .. 곧 나올거예요."

모든게 애매하다. 확실한 것은 아이가 저기 누워있다는 것 뿐이다. 대학병원 시스템은 교수급 의사가 있고 그 아래 전공의가 있다 전공의는 소위 인턴 같기도 한데 잘 모르겠고, 교수급 의사를 위시해 실무를 수행하는 역할을 한다. 의사 면담은 주로 전공의가 한다. 교수급 의사는 만나기도 힘들고, 만나자고 하면 전공의는 난색을 표한다. 일단 1주일은 예상했으니 기다려보자.




16년 입원 + 4일

입원해야 했던 증상인 청색증, 호흡곤란은 크게 호전됐고, 폐손상여부는 크게 문제없어 보이지만 아직 속단하긴 이른 상태라고 한다. 건강하고 밥도 잘 먹는다고 한다. 다만 황달 수치가 높아 광선치료를 받고 있다고 한다. 주변을 둘러보니 다 광선치료 받고 있다. 황달은 신생아때 많이 보이는 증상이고 대부분 간단한 치료나 자연적으로 해소된다고 한다. 느낌상 여기 입원하면 대부분의 아이는 황달 썬텐을 하는 듯 보인다. 물론 내 생각이다. ㅋㅋ 

인간의 의료행위엔 너무나 많은 딜레마가 있다. 단언할 수 없다. 그래서 의료진단엔 모호한 소견이 많다. 그래서인지 점점 첨단장비 데이터 의존도가 높아지는 것 같다. 먼 미래 의사없는 첨단장비 치료는 상상이되지만 첨단장비없는 의사를 상상할 수 있을지.... 란 쓸데없는 노파심이 스친다.

아픈 사람이 완쾌되어 병원문을 나서지 않는 이상 의료진은 환자 못지 않게 긴장할 수 밖에 없을 것이고 엄청난 스트레스에 시달릴 것이다. 그리고 생명을 다룬다는 이유 때문인지 모든게 비싸다. 혹자의 말에 의하면 똑같은 가위 하나도 병원에 납품되는 가위는  헐씬 고가라고 한다. 자동차 하나 만들기 위해 수만개의 부품이 필요하고 수많은 업체가 연결돼 있듯이 병원도 수많은 연결고리가 있겠다. 나비효과라고 해야 하나? 핏줄처럼 얽혀있는 구조의 모든 흐름을 유통이라고 본다면 유통에는 비용이 발생된다. 복잡하면 복잡할 수록 많은 비용이 발생될 수 밖에 없다. 구분하기도 힘든 유통속에 암같은 존재가 섞여 있는 것이 바로 우리가 종종 뉴스에 접하는 온갖 비리 횡령 기타 등등 되겠다. 결국 최종 소비자는 비싼 댓가를 치루게 되는데 평소에 열심히 세금을 냈다면 정부에서 많은 부분을 의료보험으로 보장해 준다. 정부의 의료보험 예산은 결국 발생되는 모든 비용에 붙어 있는 세금이다. 정부의 역할은 세금을 걷어서 사회가 균형 발전을 이루도록 적절히 분배하는 역할이다. 정부가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해 생기는 것이 바로 매일 뉴스에 빵빵 터지는 비리와 혈세 낭비라 하겠다. 

온갖 잡념으로 멍때리고 있을 때, 의사가 왔다.

"지난주 찍은 아이 두뇌초음파 결과 이상 소견이 나왔어요. 교수님이 한번 더 보자고 하셨어요."

"두뇌 이상이요? 호흡이 아니고 머리요????? 무슨 문제인데요?"

"문제가 아니라 정상은 아니고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소견이예요. 신생아라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는 문제 일 수 있지만 이상일 수도 있기 때문에 다시 보자는 거예요. 바로 확인해 봐야 소용없고 일주일정도 시간이 지난 후 확인 해야 해요."

"그럼 일주일이나 더 있어야 합니까??"

"지금은 그래요. 지난 금요일에 찍어으니 이번주 금요일에 다시 뇌초음파 할거예요."

"그러면 그때까진 무조건 그냥 기다리나요??"

"네"

그 놈의 '이상소견'... 확인해야지. 그래 확인해야지. 문제있으면 어떻게해. 확인해야지. 이렇게 되뇌지만 뭔가 시원치 않은 답변이 저 밑에서 분노가 올라오게 하고 있다. 전공의는 본인이 책임질 수 없는 모든 내용을 제외하고 차트를 보고 할 수 있는 말만 전달하고 서둘러 자리를 뜬다. 젊은 전공의는 아직 지식만 있는 상태인 듯하다.



16년 입원 + 10일

어제 오늘 퇴원할 수 있으니 아이옷이나 겉싸게 준비해서 오라고 했다. '드디어 나오는구나' 아내는 아직 아물지 않은 몸을 탈옥범 같은 행색으로, 나는 들뜬 마음으로 왔다. 아직 아내는 아이를 만져보지도 못했다.

오늘은 두번째 뇌초음파 결과가 나오는 날이기도 하다. 의사를 기다리고 있다. 

내 느낌일까? 오기 싫은 몸짓이 잔뜩 밴 전공의가 주섬주섬 온다. '뭐가 있나?' 짧은 순간에 엄청난 불안감이 밀려온다.

의사가 먼저 말을 꺼낸다.

"교수님이 MRI(핵자기공명단층촬영)를 찍자고 하셔요."

"그게 무슨 말이죠? 뇌초음파 결과가 뭔데요?" 난 매우 공격적이다.

"지난주에 나타난 이상소견이 사라지지 않고 그대로예요. 뇌초음파로는 정확한 진단이 어려우니 MRI를 찍자는 거예요."

"아니~ 문제가 있으니깐 그럴거 아니예요. 그러니깐 내말은.. 그 이상소견이란 것이 어떤 문제를 일의킬 수 있는지? 아이가 장애가 생길 수 있는 건지, 말을 못하게 될 수 있는건지.. 뭐 그런 예상 문제가 있을거 아니예요."

혓바닥이 꼬인다. 하고 싶은 말은 많은데 지들끼리 머리속에서 서로 엉켜 제대로 나오진 않는다. 전공의는 설명을 하려 애쓰지만 나와 비슷한 상태인 듯 하다. 해줄 수 있는 말을 민간인 레벨로 순화하는데 애를 먹는다.

"저희도 최선을 다하고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각 전공의가 있는데 전공의 판독결과 이상이 있을 수 있다는 소견이예요. 교수님은 그 이상이 있을 수 있다는 소견을 확실히 보기 위해 MRI를 찍자는 거구요."

"그럼 또 얼마나 기다려야 하는데요? 또 일주일?"

"일주일은 아니지만 절차가 있어서... 저희도 빨리 해달라고 막 졸라요. 아마 다음주 화요일에 스케줄이 잡힐 거 같아요." 4일 후다.

"휴~~~~" 

내 눈엔 강철벽도 뚫을 만한 섬광이 뿜어진다. 할 말이 많은데 할 말이 없다. 의사를 놔줬다. 젊은 여자 전공의의 뒷 모습에서 아주 잠깐 안쓰러움이 스친다. 하지만 그녀의 입장까지 돌볼만큼 난 대인배가 아니다. 부모님에게 계속 전화가 온다. 나 못지 않게 불안해 하신다. 

"별일 아니예요. 정말 건강해요. 밥도 잘먹구 똥도 잘싸고, 걱정안해도 돼. 여기서는 확실하게 하려고 철저히 검사하니깐 오래걸리는 거예요. 조급해 하지말고 기다리면 돼요. ㅎㅎ 여기서 오히려 편히 지내는거 같은디~ 여기 간호사가 몇명인데~"



16년 입원 + 14일

오늘이 마지막날이길~ 

아니....................... 혹시 진짜 어디 안좋으면 어쩌지??????????????

어제 찍은 MRI 결과가 나오는 날이다. 아침 일찍 간호사가 전화를 걸어왔다. "혹시 오늘 퇴원할지도 모르니 준비는 해오세요." 한번 당해서인지 반신반의한 조린마음으로 아내와 병원을 갔다. 그 동안 아내는 병원에서 뽀은이 안고 젓병도 물리고 안기도 했는데 어느 순간 조용하다 싶으면 뽀은이 얼굴을 보며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다. 

"왜 울어! 애 건강하고 문제 없는데 왜 울고 그래. 너가 보기에 아픈애 같아?"

부질없는 위로인 것 같아 울게 놔뒀다. 며일전에 돌아오는 차에서 아내가 '내가 제왕절개 안해 힘들게 해서 잘못.....' 라며 말 끝을 흐린다. 난 말도 안돼는 소리라면 정색한다. 아내는 작은 꼬투리도 자신의 탓인듯 느끼고 있었다. 아내는 우리들 어머니에게서 많이 보던 자식에 대한 무한 자책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오늘 퇴원하실 수 있어요. 이따 교수님 면담하실 거예요."


그 동안 불안과 불신이 모두 훨훨 날아간다. 그냥 입꼬리가 올라간다. 그냥 마음이 너그러워진다.

교수 면담에서 능숙한 화술로 궁금해 할 부분을 민간인 눈높이 문장으로 술술 얘기한다. 요약하면 '신생아 시기엔 작은 의심도 그냥 지나칠 수 없다. 혹시라도 이 시기에 문제를 놓치면 심각할 수 있기 때문에 확실히 하는 것이 좋다.' 이다. 결론적으로 매우 건강하다. 의심되는 부분이 사라졌고, 심지어 앞으로 아이발달관련 병원 체크도 할 필요가 없어 보인다고 말한다. 교수는 익숙한 듯 보호자들의 의심을 손쉽게 제거하고 달랜다. 옆에서 뒤돌아 서기로 돌변해 타자를 치고 있는 전공의 등짝이 눈에 들어온다. 이상하게 그 등짝엔 교수대신 맞은 화살이 잔뜩 꽂혀있는 듯한 환상이 보인다.

난 어제까지만 해도 병원을 불태우고 난동을 부리는 등 온갖 상상을 하며 지냈는데 일시에 해소가 되니 너무 허무하기도 하다. 병원에서 나에게 바라는 돈을 지불하고 아이를 그곳에서 데리고 나올 수 있었다. 난 병원에서 일부러 시간만 질질 끌었다고 말하진 못한다. 그리고 그 사람들이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고도 말하지 못한다. 그들의 일을 열심히 했다고 생각한다. 그들을 깍아내리기엔 나 또한 너무도 편협하고 아이 생각밖에 없는 무지렁이 아빠일 뿐이다. 막연히 산부인과 원장님의 투박한 신뢰가 그립다. (참! 여길 보낸 장본인이지? ㅋㅋ 탓하고 싶진 않다.)

A4용지 4장짜리 의료비 명세서를 들고 더 커지고 좋아지기 위해 옆에서 한 창 공사중인 대학병원을 빠져나오며  ........  세식구는 처음으로 함께 하늘을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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