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치캔 몰래먹기

늦은밤 우동생각이 간절하다.

나가서 기계우동이라도 먹을까 생각하다 일요일 새벽에 연곳도 없을 것 같고, 무엇보다 귀찮다.

나에겐 생생우동이 있다. 깍두기, 장조림... 우동만 먹기엔 뭔가 부족하다. 그래 5000년 전통의 탄수화물 햇반을 곁들이자.

완벽한 야식이라 생각했는데 아내가 비상시 먹으라고 사둔 참치캔이 문득 떠오른다.

참치캔은 우리집에선 피곤한 인스턴트 중 하나다. 고양이 4마리의 포위망을 뚫고 온전히 입속에 넣는게 보통 까다로운게 아니다. 참치캔 따위는 신경쓸 겨를 없도록 뭔가를 입에 물려줘야 편히 먹을 수 있다. 

근데 지금 냥4의 레이더가 웬지 허술하다.

잠에서 깬지 얼마안돼 어리버리하고 이 시간에 내가 참치캔을 딸거란 걸 전혀 예상하지 못한듯하다.

'도전!'

표정관리 잘하면 안 걸릴 수 있겠다 싶다.

우선 세팅을 해야 한다. 식탁에 동그랗게 냥이들에게 인증받은 "못먹을 음식"을 깐다. 그리고 캔을 주머니에 넣고 자연스럽게 우동을 내려놓고 먹는다. 

아직까진 모른다. 근처에도 없다. 

주머니에서 참치캔을 꺼내 조심스럽게 깐다. 캔 따는 소리를 내면 안된다. 거짓말이 아니라 아주 미묘한 행동과 소리에도 반응한다. 조심조심 "띡~" ㅋㅋㅋㅋ 매우 성공적이다. 

이렇게 살아야 하나 싶다. ㅠㅠ 

그때! 

"으~응?" 하고 홍삼이가 저기서 온다. 

참고로 홍삼이는 4마리중 막네인데 매우 영특하다. 영특하기만 하면 좋은데 사람 알기를 발가락때로 여긴다. 그리고 째순이도 뭔가를 눈치채고 두리번거리며 들어온다. 째순인 첫째다. 진짜 이름은 째즈인데 살다보니 째순이가 됐다. 

째순이 특기는 귀뚜라미 분해! 오래된 집이라 벌레가 종종 나오는데 난 항상 벌레들이 측은하다. 내가 잡고 자시고 할 여유도 없이 그냥 분해된다. (명복) 

하여튼.. 제일 눈치 빠른 두 녀석이 탐색한다. 

이때가 중요하다. 

동요하면 딱걸리는 거다. 평소 밥먹을때처럼 그냥 자연스럽게... 

걸리면 어떻게 되냐구? 음~ 나머지 2마리가 더 온다. 그리고 욕구에 충실한 홍삼이는 막 들이델것이고 난 고함을 치겠지. 행사장 앞 풍선 삐에로처럼 이리저리 팔을 휘저을것이고, 빈틈이 보이면 둘째 은동이가 돌진하겠지. 6키로 몸무게에 가속도 붙어 달려드는 녀석 제지하려면 꼭 뭔가가 엎어진다. 엎어질게 깍두기면 오늘 잠은 다 잔 것이지. 하여튼 피곤하다. 

포위망이 좁혀져 식탁위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째순이가 훌쩍뛰어 옆 의자에 올라와 고개를 뺀다. 

"어헛! 식탁에 올라오지 말랬지! 내려가" (근엄하게 최대한 낮은 톤으로)

반찬 엄폐물덕에 캔이 안보이나 보다. ㅋㅋ 밑에서는 여전히 홍삼이는 "으~응" 하며 킁킁대고 다닌다. (정말 홍삼이는 뭔가 궁금한게 있으면 "으~응" 하는 소릴 낸다.) 

난 급기야 참치를 마셔버렸다. 웬지 이젠 걸리면 나의 위엄에 금이 갈 것 같다. 몰래 참치캔 먹는 새끼 쯤으로 낙인찍힐지 모른다. 물가지러 가는 척하며 싱크대에 잽싸게 행구고 찌그러기 흔적을 처리한다. 홍삼이 냅다 달려온다. 징한년!

하여튼 억지로 억지로 캔은 무사히 폐기하고 식탁에 돌아와 난 남은 음식을 먹는다. 아직도 냄새가 있는지 째순이 또 식탁근처로 왔을때 난 당.당.히 식탁에 와서 확인하라고 했다. 

"이거? 깍두기! 이거? 우동. 우동 너 안먹잖아~ 없지? 없다니깐 그러네~"

개 피곤하다. 담에는 그냥 맛난거 입에 물려주고 먹는걸로~


(출연1 홍삼)

(출연2 째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