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모유 수유 대첩

말로만 듣던 눈에 넣어도 안 아픈 불가사의한 물체가 품으로 돌아왔다. 조리원 졸업 3일 남기고 도착하니 여기저기 이웃 산모님들과 조리원 선생님들이 축하 인사를 건네주시고 아내와 말을 나누지 않았던 분들도 눈으로 나마 하이파이브를 날려주신다. 운동장 구석에 쪼그려 앉아 뛰노는 친구들을 곁눈질 하며 흙바닥에 삼각형만 그리던 아내가 함께 뛰기 시작한 샘이다.

드라마라면 여기까지 해피엔딩으로 "행복하였습니다~" 하고 마무리하면 되겠지만.. 현실은 아니올시다.

첫 모유 수유를 시도한다.

태어나 보름 넘는 시간을 쉽게 먹던 버릇으로 모유 수유가 쉽지 않을거란 얘길 들었었다. 왜? 맛이 없나? 맛 때문이 아니라 습관때문이다. 무서운 먹는 습관. 입만 대면 힘들이지 않아도 샘솟듯 쏟아지는 젖병에 길들여졌다. 엄마 젖꼭지는 빨지 않으면 나오지 않는다. 먹으려면 그만한 노동을 해야 하는데 쉽게 먹던 아이 입장에선 억울하고 분하다. 배고파 죽겠는데, 잘나오는 밥 달라고 때쓴다. 

모유수유는 젖병보다 60배정도(정확하진 않다.) 빠는게 힘들다고한다.

"그게요~ 아빠보고 한번 빨아보라 하세요. 1분만 빨아도 숨차서 못해요."

아내가 전해준 말을 듣고 '와~ 정말? 젖먹던 힘이 그냥 나온말이 아니네~' 했지만, 은근히 궁금하다. 도전해 볼까? 아내에게 귓싸대기 맞을 거 같아 나중에 기분 좋으면 말해보기로 하고 일단 궁금해도 참는다.

모유는 아이가 빠는 방식과 혀 놀림에 따라 모유가 나오거나 나오지 않도록 설계된 매우 신비로운 창조물이다. 뿐만 아니다. 나를 더 놀라게 한 것은 엄마 젖에는 블루투스 기능이 내장돼 있다. 요즘 스마트폰이나 이어폰 등에 달려있는 블루투스 기능은 매우 하급이라 할 수 있다. 엄마 젖 블루투스 기능을 알려주신 건 어머님이다. 

"지선이가 '젖이 돈다'란 말이 뭔지 몰랐데, 근데 요즘 모유를 먹이다보니 뽀은이가 젖을 잘 빨면 뭔가 '찌릿' 한 느낌이 오면서 안에서 젖이 생기는 느낌이 온다는 거야~ 엄마도 그랬어?"

"ㅎㅎㅎ 그게 젖도는거야. 그뿐인줄 알아? 한참 있다보면 젖이 찌릿찌릿하고 그래.. 그러면 '아~ 아이 젖 먹일때가 됐구나' 하고 알게돼. 애 먹는 시간되면 알아서 신호가 와~"

"정말? 대박일세~"

이것이 인체의 신비, 태초의 블루투스 기능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출산과정부터 옆에서 죽 지켜보는데 자세히 들여다 보면 참 신기방기한 일들이 많다. 평소라면 그냥 당연한 듯 보이는데 면밀히 뜯어보면 신기하다. 인체의 신비에 비하면 현재의 의학이나 과학은 뒤떨어져도 한참을 뒤떨어진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신비고 나발이고 아주 죽겠다.

조리원방에서 아내는 가슴을 풀어헤치고 아이를 옆으로 눕힌다. 아니 눕히려고 했다. 근데 옆으로 눕히는게 잘안된다. 아이가 자꾸 흘러내리고 문어마냥 흐느적 거린다. 문어가 물밖에 나오면 목도 못 가누고 흐느적거리는데 똑 같다. 당췌 힘줘서 잡기도 힘들다. 몸통을 잡으면 목이 훽~ 돌아가고 머릴 잡으면 몸통과 팔다리가 자유분방하게 지 갈길 가려한다. 초보딱지를 이마빡에 써붙인 엄마를 돕는 아빠는 양발을 벌리고 몸을 반 쯤 접어서 온몸에 힘이 들어갔지만 손끝엔 힘을 빼야하는 극 난위도의 자세를 취하고 지멋대로 도망다니를 머리, 몸통, 팔, 다리를 쫏고 있다.

애가 버럭 한다.

입을 쫙 벌리고 아랫입술을 달달 떨면서 운다. 있는 힘껏 운다. 아주 죽기 살기로 운다. 큰일이다. 빨리 젖을 물려야하는데 ... 애를 니가 들었다 내가 들었다 돌렸다 세웠다 젖꼭지가 코로 들어갔다 입에 들어갔다 난리다. 등짝과 이마엔 식은땀이 비오듯한다. 뽀은이에게 코피터지게 얻어맞고 있을 때 방문이 열리면서 조리원 선생님이 나타나 상황정리 됐다. 조리원 선생님은 능숙한 손놀림으로 흐느적거리는 애를 순식간에 각을 잡는다. ㅋㅋ 내가 군대에서 각은 많이 잡아봤지만 애를 저렇게 손쉽게 각 잡다니~ 놀랍다. 각 잡힌 아이는 조리원 선생님 도움으로 다시 수유를 시도해 보지만, 이미 주도권이 뺏긴 상태라 1라운드는 포기했다.

그렇게 일차 시도에서 인생경력 17일 짜리 꼬맹이에게 줘 터지고 달라는 분유가 가득한 젖병을 내줘야 했다. 완패다.

이 글을 쓰는 오늘이 뽀은이 21일째 삼칠일이다. 조리원을 나와 남은 산후조리를 위해 아내는 처가로 갔다. 조리원 모유수유 참패 이후 지금은 부모님의 노하우를 전수받아 모유 7 분유 3 비율까지 따라잡았다. 엄마도 제법 젖물리는 자세가 그럴싸하다. 아빠인 나도 뽀은이 선빵이후 만반의 채비를 통해 호락호락 하진 않다. 처가에 도착 후 뽀은인 더 많이 이뻐지고 하루가 다르게 큰다. 그리고 매일 매일 우리 부부에게 퍼부을 맹공격을 준비하는 재미로 사는 것 같다. 산 넘어 산이다.


아기 천사 코스프레